2026/10 16

경복궁보다 먼저 보호받은 마을, 하회를 걷다

경복궁보다 먼저 보호받은 마을, 하회를 걷다양진당에서 화천서원까지, 류성룡 형제가 나고 자란 풍산 류씨 마을을 걷는 코스읽는 시간 약 5분 · 걷는 시간 약 30분위치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 일원코스6개 지점 · 마을 안 + 부용대도보약 30분(추정)분류마을과 골목1984년 1월 14일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하회마을은 면적 6,495,535㎡, 1,577필지에 이르는 풍산 류씨의 동족마을이다[1]. 2010년 7월 31일에는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조선 중기의 명재상 서애 류성룡과 그의 형 겸암 류운룡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01. 마을 전체, 풍산 류씨의 동족마을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크게 휘감아 흐르는 자리에 들어선 풍산 류씨의 동족마을이다[1]. 1984년 중요..

마을과 골목 11:15:27

2394년에야 열리는 타임캡슐이 묻힌 마을, 남산골을 걷다

2394년에야 열리는 타임캡슐이 묻힌 마을, 남산골을 걷다다섯 채의 옮겨온 한옥과 정자들 사이, 서울 정도 600년의 기록을 걷는 코스읽는 시간 약 5분 · 걷는 시간 약 24분위치서울 중구 필동 남산골한옥마을 일원코스7개 지점 · 전통정원·한옥 구역도보약 24분(추정)분류마을과 골목남산골한옥마을 한쪽에는 368년 뒤, 2394년 11월 29일에야 열리는 타임캡슐이 묻혀 있다[5].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해 1994년에 묻은 것으로, 복권과 여권과 차량 번호판 같은 600점의 물건이 들어 있다[5]. 이 마을 자체도 어딘가에서 옮겨온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 서울 시내에 흩어져 있던 민속문화재 한옥 다섯 채를 모아 1998년에 조성한 마을이다[3].01. 천우각과 청학지, 피서지였던 입구 전통정원 입..

마을과 골목 2026.10.23

종묘와 사직을 함께 들인 행궁, 남한산성을 걷다

종묘와 사직을 함께 들인 행궁, 남한산성을 걷다한남루에서 좌전과 이위정까지, 상궐과 하궐 227칸의 자리를 걷는 코스읽는 시간 약 5분 · 걷는 시간 약 12분위치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로 784-29 일원코스7개 지점 · 행궁 경내도보약 12분(추정)분류궁궐과 고궁남한산성 행궁은 비상시를 위해 지어진 궁궐이다. 1624년 산성을 쌓기 시작하면서 이서의 제안으로 함께 짓기 시작해 1626년(인조 4) 완성됐다[2][3]. 왕이 머물 상궐 73칸, 신하들이 일할 하궐 154칸, 모두 227칸 규모였다[3]. 2007년 사적으로 지정됐고[1], 지금 걸을 수 있는 건물들은 발굴 결과를 근거로 순서대로 다시 세워진 것들이다[4].01. 한남루, 들어가는 문 행궁의 정문 누각 이름은 한남루다. 정조 22년에 세워..

산성과 성곽 2026.10.22

나주읍성 걷는 방법 — 전봉준은 서성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NAJU · WALLED TOWN WALK나주읍성 걷는 방법전봉준은 서성문으로 걸어 들어갔다羅 州 邑 城읽는 시간 약 12분 · 걷는 시간 약 1시간 30분PHOTO 01 · 나주읍성 서문 영금문(暎錦門)과 복원 성벽. 1894년 여름, 동학농민군이 공격했고 전봉준이 직접 걸어 들어온 문이다.Mar del Este · CC BY-SA 4.0 (Wikimedia Commons)1894년 동학농민군은 전라도의 고을을 차례로 손에 넣었습니다. 그 기세 속에서도 끝내 성문을 열지 않은 고을이 있었습니다. 전라도에서 나주와 운봉, 단 두 곳뿐이었다고 합니다.5 그런데 그 나주성 안으로, 농민군 최고 지도자 전봉준이 칼 대신 열 명 남짓한 일행만 데리고 서문을 지나 걸어 들어간 날이 있습니다.그는 무엇을 하러 들어..

산성과 성곽 2026.10.21

동피랑 걷는 방법 — 누각은 집 세 채만 가져갔다

TONGYEONG · VILLAGE WALK동피랑 걷는 방법누각은 집 세 채만 가져갔다東 피 랑 · 統 制 營 東 鋪 樓읽는 시간 약 12분 · 걷는 시간 약 1시간PHOTO 01 · 동피랑 오르막 골목의 담장 벽화. 벽화는 2년 안팎마다 공모를 거쳐 새로 그려지기 때문에, 이 그림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Mobius6 · CC BY-SA 4.0 (Wikimedia Commons)통영 중앙시장 뒤편, 강구안을 내려다보는 비탈에 작은 집들이 층층이 붙어 있습니다. 담장마다 물고기와 꽃이 그려진 이 동네는 한때 공원 조성을 위해 통째로 헐릴 예정이었습니다. 철거의 명분은 마을 꼭대기에 있던 조선 수군의 옛 시설, 동포루를 되살리는 것이었지요.그런데 결과는 계획과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동포루는..

마을과 골목 2026.10.20

논산 돈암서원 걷는 방법 — 강당은 91년 늦게 도착했다

NONSAN · SEOWON WALK논산 돈암서원 걷는 방법강당은 91년 늦게 도착했다遯 巖 書 院읽는 시간 약 12분 · 둘러보는 시간 약 40분~1시간PHOTO 01 · 돈암서원 안마당. 가운데가 지금 강당 자리를 차지한 양성당, 좌우가 유생들이 머물던 동재와 서재다.Ryuch · CC BY-SA 3.0 (Wikimedia Commons)논산 연산면의 돈암서원에 들어서면 조금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서원의 정석은 '앞에서 배우고 뒤에서 제사 지내는' 배치입니다. 강당 한 채가 마당 한가운데서 사당을 등지고 서는 것이 보통이지요. 그런데 이곳에는 강당 구실을 하는 건물이 둘이고, 그중 더 크고 오래된 응도당은 축에서 비켜나 옆으로 돌아앉아 있습니다.이유는 서원의 이사 기록에 있습니다. 홍수에 밀..

공산성 걷는 방법 — 광복루의 첫 현판은 총독이 썼다

GONGJU · FORTRESS WALK공산성 걷는 방법광복루의 첫 현판은 총독이 썼다公 山 城읽는 시간 약 12분 · 걷는 시간 약 1시간 30분~2시간 30분PHOTO 01 · 공산성 동쪽 봉우리의 광복루(光復樓). 지금의 이름을 얻기까지 자리도, 이름도 한 번씩 바뀌었다.Ashy Minivet · CC0 (Wikimedia Commons)공주 공산성의 동쪽 끝, 해발 110m 봉우리에는 작은 누각이 하나 서 있습니다. 붉은 기둥 위에 '광복루(光復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어 많은 사람이 해방을 기념해 새로 지은 건물로 여깁니다. 그런데 이 누각은 원래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고, 처음 걸린 현판에는 전혀 다른 이름이, 그것도 조선총독의 글씨로 쓰여 있었다고 전해집니다.오늘은 이 누각이 어떻게 산꼭대기..

산성과 성곽 2026.10.18

정림사지 오층석탑 걷는 방법 — 정복자는 비석을 세우지 않았다

BUYEO · HERITAGE WALK정림사지 오층석탑 걷는 방법정복자는 비석을 세우지 않았다定 林 寺 址 五 層 石 塔읽는 시간 약 12분 · 걷는 시간 약 1시간 (박물관 포함)PHOTO 01 · 넓은 절터 한가운데 홀로 선 정림사지 오층석탑. 뒤로 보이는 건물은 강당 자리에 세운 보호각이다.Bernard Gagnon · CC0 (Wikimedia Commons)부여 시내 한복판, 높이 8.33m의 석탑 하나가 1,400년 가까이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백제가 사비로 도읍을 옮긴 무렵 세운 절, 정림사의 탑입니다. 목조 건물은 모두 불타 사라졌는데 이 탑만은 무너지지 않고 남았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1층 몸돌을 들여다보면 이상한 것이 눈에 띕니다. 돌 표면을 빼곡하게 채운 한자입니다. 백제..

수원화성 걷는 방법 — 영수증이 성을 다시 세웠다

SUWON · FORTRESS WALK수원화성 걷는 방법영수증이 성을 다시 세웠다水 原 華 城읽는 시간 약 13분 · 걷는 시간 약 3시간PHOTO 01 · 언덕을 따라 굽이치는 수원화성 성벽. 지금 보이는 돌의 상당 부분은 1970년대에 다시 쌓은 것이다.Bernard Gagnon · CC0 (Wikimedia Commons)수원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때 장안문과 창룡문이 완전히 부서졌고, 지금 걷는 성곽의 많은 부분은 1970년대 후반에 복원된 것입니다. 절반쯤 새로 쌓은 성이 어떻게 '진정성'을 인정받았을까요?답은 돌이 아니라 책에 있습니다. 공사가 끝난 뒤 정조의 명으로 만든 『화성성역의궤』는 성을 찬양하는 기념서라기보다, 누..

산성과 성곽 2026.10.16

고창 고인돌 걷는 방법 — 무덤은 비어 있었다

GOCHANG · HERITAGE WALK고창 고인돌 걷는 방법무덤은 비어 있었다高 敞 支 石 墓읽는 시간 약 12분 · 걷는 시간 약 1시간 30분~2시간PHOTO 01 · 죽림리 고인돌 유적. 낮은 산자락 아래 풀밭에 크고 작은 덮개돌이 이어진다. 뒤편 능선이 이 돌들이 떨어져 나온 곳이다.Kussy · CC BY-SA 3.0 (Wikimedia Commons)고창 매산마을 뒷산 자락에는 집채만 한 돌이 수백 개 놓여 있습니다. 한 사람의 무덤에 수십 톤짜리 돌을 얹었다면, 그 아래에는 당연히 귀한 물건이 묻혀 있으리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청동 칼이나 옥 장신구 같은 것들 말이지요. 그런데 이곳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고인돌은 거의 모두 비어 있었습니다. 칼도, 옥도, 화살촉도 나오지 않았습니다.그렇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