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CHANG · HERITAGE WALK
고창 고인돌 걷는 방법
무덤은 비어 있었다
高 敞 支 石 墓
읽는 시간 약 12분 · 걷는 시간 약 1시간 30분~2시간
고창 매산마을 뒷산 자락에는 집채만 한 돌이 수백 개 놓여 있습니다. 한 사람의 무덤에 수십 톤짜리 돌을 얹었다면, 그 아래에는 당연히 귀한 물건이 묻혀 있으리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청동 칼이나 옥 장신구 같은 것들 말이지요. 그런데 이곳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고인돌은 거의 모두 비어 있었습니다. 칼도, 옥도, 화살촉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무거운 돌들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세운 것일까요. 오늘은 숫자와 채석장, 돌의 모양, 그리고 텅 빈 무덤방을 차례로 읽으며 세계유산 고창 고인돌 유적을 걸어봅니다.
| 위치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매산마을 일대 (고인돌박물관: 고창읍 고인돌공원길 74) |
| 형태 | 청동기시대 무덤·기념물인 고인돌(지석묘) 군집. 탁자식·바둑판식·지상석곽형 등이 섞여 있다 |
| 연대 | 기원전 1천년기 무렵 |
| 규모 | 죽림리 442기 + 도산리 5기, 동서 약 1.8km에 걸쳐 분포 |
| 지정 | 사적 (1994년 12월 21일) · 유네스코 세계유산 (2000년, 화순·강화와 함께) |
數
CHAPTER 01
447이라는 숫자 뒤의 1,000
고창 고인돌 유적의 공식 숫자는 447기입니다.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한 죽림리에 442기, 조금 떨어진 도산리에 5기가 있습니다.1 하지만 이 숫자는 '지금 남아 번호가 붙은 것'일 뿐입니다. 농사와 개간으로 부서진 것까지 헤아리면 약 550기에 이르고,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1,000기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됩니다.2
숫자를 다른 곳과 나란히 놓으면 고창의 밀도가 더 또렷해집니다.
| 구분 | 고인돌 수 |
|---|---|
| 고창 세계유산 구역 (죽림리·도산리) | 447기 |
| 고창군 전체 | 1,748기 |
| 화순 고인돌 유적 (세계유산) | 596기 |
| 강화 고인돌 유적 (세계유산) | 약 160기 |
세 곳이 함께 세계유산에 올랐지만, 한 마을 뒷산에 이만큼 몰려 있는 곳은 고창이 유일합니다. 덮개돌 길이가 4m를 넘는 대형만 21기이고, 가장 큰 2404호는 덮개돌이 길이 5.8m, 너비 5.0m, 두께 2.0m에 이릅니다.1 걷다 보면 돌마다 붙은 네 자리 번호 팻말이 보이는데, 이 번호가 곧 유적의 주소입니다.
石
CHAPTER 02
돌은 바로 뒷산에서 굴러 내려왔다
수십 톤짜리 돌을 어디서 가져왔을까요. 답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유적 뒤편 성틀봉과 중봉의 7~8부 능선에서 덮개돌을 떼어낸 채석장 흔적이 확인되었습니다. 1999년 전주대학교 박물관 조사로 드러난 곳으로, 자료에 따라 23곳 또는 25곳으로 셉니다.3
흥미로운 점은 이 채석장에 쐐기 구멍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위에 구멍을 파고 나무 쐐기를 박아 쪼갠 것이 아니라, 바위가 원래 갈라지는 결, 곧 절리면을 이용해 판처럼 떼어낸 것으로 봅니다. 떼어낸 돌은 경사를 따라 아래로 굴려 내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채석장 바위와 고인돌 덮개돌은 같은 데사이트질 응회암이어서, 돌의 고향이 바로 이 능선이라는 사실이 암석으로도 뒷받침됩니다.3
그래도 무게는 남습니다. 고창군 고인돌박물관은 2코스의 2406호 덮개돌 무게를 120~150톤으로 추정하고, 유적에서 가장 큰 축에 드는 140톤급 돌을 옮기려면 약 1,200명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계산합니다.4 마을 하나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인원입니다. 돌 하나를 옮기는 일 자체가 주변 여러 마을이 함께 움직인 큰 행사였다는 뜻이고, 고창 고인돌을 '사회를 보여주는 돌'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形
CHAPTER 03
탁자, 상자, 바둑판
고창이 고인돌의 '야외 박물관'이라 불리는 건 수만이 아니라 모양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걸으면서 세 가지만 구분해도 풍경이 달라 보입니다.
① 탁자식. 두 장의 넓적한 받침돌을 세우고 그 위에 덮개돌을 얹은 형태입니다. 한강 이북에 많아 '북방식'이라고도 부릅니다. 고창에서는 아주 드물어, 백과사전 분류로 탁자형은 2기에 불과합니다.1
② 지상석곽형. 땅 위에 판돌이나 돌덩이로 상자 같은 무덤방을 짜고 그 위를 덮개돌로 덮은 형태입니다. 고창에서 가장 흔한 축으로, 44기가 이 유형으로 분류됩니다.1
③ 바둑판식. 두꺼운 덮개돌을 짧은 굄돌 몇 개가 받치거나, 굄돌 없이 땅에 거의 닿게 놓은 형태입니다. 한강 이남에 많아 '남방식'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고창에서 '거대한 바위'로 기억하는 돌 대부분이 이 유형입니다.
연구자들은 이 세 유형을 탁자식에서 지상석곽형을 거쳐 바둑판식으로 이어지는 변화로 읽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한 유적 안에 고인돌 문화의 앞뒤가 모두 들어 있는 셈입니다. 6코스 도산리의 탁자식 고인돌은 한반도 가장 남쪽에 있는 북방식 고인돌로 알려져 있습니다. 덮개돌은 3.5×3.1m이고, 두 받침돌 사이 간격은 65cm 남짓입니다.7 북쪽의 형식이 어디까지 내려왔는지 보여주는 경계석입니다.
空
CHAPTER 04
스물두 번 열었고, 거의 비어 있었다
고창 고인돌 아래를 실제로 파 본 것은 지금까지 22기입니다. 1965년에 3기, 1990년대 초에 17기(자료에 따라 16기)를 발굴했고, 태풍에 쓰러진 2419호와 거대한 2433호를 따로 조사했습니다.2 결과는 한결같았습니다.
"무덤방 안에서 부장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고창 죽림리 지석묘군」
1965년과 1991년 무렵의 발굴에서는 유물이 나오지 않았고, 무게 24톤인 2419호는 덮개돌을 들어 보니 무덤방 자체가 없었습니다.2 고인돌 전문가인 이영문 교수도 같은 점을 짚습니다.
"고창 고인돌에서는 석검 등 부장유물이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 이영문, 국가유산청 기고문 「고창 고인돌 유적」
예외는 하나입니다. 무게 48톤, 생김새 때문에 '두꺼비 고인돌'이라 불리는 2433호입니다. 이 돌 아래에서 민무늬토기 6개체와 붉은간토기(홍도) 1점이 나왔고, 가까운 무덤방에서는 초기철기시대의 덧띠토기 조각이 확인되었습니다.2 그마저도 칼이나 장신구가 아닌 토기였습니다.
빈 무덤방에는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산성 토양에서 뼈와 유기물이 사라졌을 수도 있고, 처음부터 귀한 물건을 넣지 않는 장례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영문 교수는 고창 고인돌의 대부분을 무덤으로 보면서도, 일부는 권력의 상징물이나 신앙의 대상물 같은 거석기념물이었을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합니다.6 무덤방이 아예 없는 2419호가 바로 그런 예일 수 있습니다.
값진 것은 돌 아래가 아니라 돌 그 자체였다.
천 명이 넘는 사람이 힘을 합쳐 옮긴 수십 톤의 돌. 고창 고인돌이 남긴 '부장품'은 무덤방 안의 물건이 아니라, 그 돌을 옮길 수 있었던 공동체의 힘이었는지도 모릅니다.
列
CHAPTER 05
등고선을 따라 늘어선 돌
유적을 조금 높은 곳에서 보면 고인돌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지 않다는 게 보입니다. 돌들은 해발 15~65m 사이 산기슭에서 등고선을 따라 줄지어 놓여 있습니다.2 뒤로는 덮개돌을 내준 능선이, 앞으로는 고창천이 흐르는 평야가 펼쳐집니다. 돌을 떼어내기 쉬운 산과 농사짓기 좋은 들 사이, 사람이 살던 마을과 조상이 쉬는 자리가 맞닿은 경계선입니다.
유네스코가 2000년 고창·화순·강화 고인돌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며 든 기준은 (iii), 곧 사라진 문명이나 문화 전통의 독보적인 증거라는 점이었습니다. 고창 구역은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한 8.38ha입니다.5 기원전 1천년기 이 땅에 어떤 사회가 있었는지 문자 없이 보여주는 기록이 바로 이 돌의 행렬입니다.
| 연도 | 고창 고인돌에 일어난 일 |
|---|---|
| 기원전 1천년기 | 고인돌 축조 |
| 1965 | 첫 발굴(3기), 유물 없음 |
| 1990년대 초 | 17기(자료에 따라 16기) 발굴, 역시 부장품 없음 |
| 1994 | 사적 지정 (12월 21일) |
| 1999 | 전주대학교 박물관, 능선 채석장 조사 |
| 2000 | 화순·강화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
| 2008 | 고창 고인돌박물관 개관 (9월) |
| 2021 | 국가유산 지정번호 제도 폐지로 사적 번호 표기가 사라짐 (11월 19일) |
步
WALK
여섯 개의 코스, 번호를 따라
유적은 고인돌박물관에서 시작해 1~5코스로 나뉘어 있고, 다섯 코스를 합친 길이는 약 1.8km입니다. 6코스 도산리는 따로 떨어져 있어 차로 이동하는 편이 낫습니다.4 평지에 가까운 길이지만 4코스 채석장은 능선으로 올라가는 산길입니다.
| 순서 | 지점 | 놓치지 말 것 |
|---|---|---|
| 0 | 고인돌박물관 | 유형별 구조와 덮개돌 운반 방법 전시로 예습 |
| 1 | 1코스 (53기) | 2509호, 2513호 |
| 2 | 2코스 (41기) | 120~150톤으로 추정되는 2406호, 2428호 |
| 3 | 3코스 (128기) | 두꺼비 고인돌 2433호, 탁자식 2444호 |
| 4 | 4코스 채석장 | 능선 위 23곳의 채석 흔적, 절리면 |
| 5 | 5코스 (220기) | 가장 촘촘한 구간, 등고선 따라 늘어선 열 |
| 6 | 6코스 도산리 (5기) | 한반도 최남단 북방식 고인돌 |
· 출발점은 고창 고인돌박물관(고창읍 고인돌공원길 74)입니다. 전시를 먼저 보고 나가면 번호 팻말이 훨씬 잘 읽힙니다.
· 박물관과 유적 사이에 탐방열차가 운행되는 것으로 안내되어 있지만, 운행 여부와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유적 대부분이 그늘 없는 풀밭입니다. 여름에는 모자와 물을, 4코스 산길에는 미끄럽지 않은 신발을 챙기세요.
· 고인돌은 보호 줄 밖에서 보고, 올라가거나 기대지 마세요.
· 관람 시간, 휴관일, 입장료, 열차 운행은 바뀔 수 있으니 고창군 고인돌박물관 누리집에서 꼭 확인하고 가세요.
고인돌을 다 보고 박물관 쪽으로 돌아 나오면, 처음엔 그저 큰 바위로만 보이던 돌들이 다르게 보입니다. 능선에서 떼어내 천 명이 함께 굴려 내린 돌, 그 아래를 열어 보니 아무것도 없던 돌. 이 유적이 남긴 질문은 '누가 묻혔나'가 아니라 '누가 함께 옮겼나'에 더 가깝습니다.
참고 자료
1. 「고창 죽림리 지석묘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ncykorea.aks.ac.kr/Article/E0003999)
2. 「고창 고인돌 유적」, 디지털고창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grandculture.net, GC02800530)
3. 「고창 고인돌 채석장」, 디지털고창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grandculture.net, GC02800538)
4. 고창군 고인돌박물관, 「탐방코스」·「관람안내」 (gochang.go.kr/gcdolmen)
5.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Gochang,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 (whc.unesco.org/en/list/977)
6. 이영문, 「고창 고인돌 유적」, 국가유산청 기고 (cha.go.kr)
7. 「고창 도산리 지석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ncykorea.aks.ac.kr/Article/E0015672)
※ 인용문은 위 자료의 문장을 그대로 또는 줄여 옮겼습니다. 사진은 Wikimedia Commons(Kussy, CC BY-SA 3.0 / Steve46814, CC BY-SA 3.0)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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