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0명이 2만을 막아낸 성, 함락 뒤엔 기생이 왜장을 안고 뛰어내렸다
촉석루에서 의암까지, 두 번의 전투와 하나의 순국이 겹친 진주성을 걷는 코스
읽는 시간 약 6분 · 걷는 시간 약 20분

| 위치 | 경남 진주시 남강로 626 |
|---|---|
| 코스 | 4개 지점 · 성곽 안 |
| 도보 | 약 20분(추정) |
| 분류 | 산성과 성곽 |
진주성은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됐다. 면적은 171,805.1㎡에 이른다[1]. 원래 토성이었다가 고려 우왕 때 돌로 다시 쌓았다. 이 성은 임진왜란 중 가장 극적인 승리와, 가장 비극적인 함락을 모두 겪은 자리다.
01. 1차 진주성 전투, 3,700명이 2만을 막다
1592년 10월, 진주목사 김시민은 약 3,700명의 병력으로 약 2만 명에 이르는 왜군을 막아냈다[2]. 이 전투는 임진왜란 3대첩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02. 2차 진주성 전투, 끝내 무너진 성
이듬해인 1593년 6월, 왜군은 1차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훨씬 큰 병력으로 다시 쳐들어왔다. 김천일·이종인·황진 등이 맞섰지만 끝내 성이 함락됐고, 군민 다수가 희생됐다고 전해진다[2] — 정확한 인원수는 자료마다 엇갈려 단정하지 않는다. 다만 왜군도 피해가 커 더 진격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03. 의암, 성이 함락된 뒤의 이야기
성이 함락된 뒤, 논개는 촉석루에서 열린 연회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했다고 전해진다. 1625년, 진주 사람들의 바람에 따라 정대륭이 그녀가 떨어진 바위에 '의암(義巖)'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 함락으로부터 32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04. 의기사, 그녀를 기리는 사당
의기사는 논개를 기리는 사당이다. '충의로운 기생'이라는 뜻에서 이 이름이 붙었다. 성 안에는 이밖에도 북장대·서장대·창열사·영남포정사·국립진주박물관·공북문·호국사 등이 함께 자리해, 전투와 추모의 공간이 한 경내에 모여 있다.

같은 성 안에 승리를 기념하는 장군의 동상과, 함락 뒤의 순국을 기리는 바위가 함께 있다 — 진주성은 한 번의 전쟁이 남긴 승리와 패배,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까지 전부 품고 있다.
지점을 걷다
좌표 없이 공식 자료의 구성 순서와 거리 감각으로 추정한 구간입니다. 정확한 동선은 현장 안내판을 따라주세요.
전체 코스
| 지점 | 구간 정보 |
|---|---|
| 1. 촉석루 | 머무는 시간 약 10분 · 남강을 내려다보는 누각의 풍경을 먼저 즐길 것 |
| 2. 의암 | 이전 지점에서 도보 약 2분 · 머무는 시간 약 10분 · 강가 바위에 새겨진 글자를 가까이서 확인할 것 |
| 3. 의기사 | 이전 지점에서 도보 약 2분 · 머무는 시간 약 10분 · 사당 안의 기록을 천천히 읽어볼 것 |
| 4. 김시민 장군 동상·성벽 | 이전 지점에서 도보 약 5분 · 머무는 시간 약 10분 · 1차 전투 당시의 방어선을 성벽을 따라 걸으며 가늠해볼 것 |
총 도보 약 20분 · 체류 포함 전체 약 75분(추정치)
짧은 코스(핵심만)
| 지점 | 구간 정보 |
|---|---|
| 1. 촉석루 | 머무는 시간 약 10분 · 남강을 내려다보는 누각의 풍경을 먼저 즐길 것 |
| 2. 의암 | 머무는 시간 약 10분 · 강가 바위에 새겨진 글자를 가까이서 확인할 것 |
| 3. 김시민 장군 동상·성벽 | 머무는 시간 약 10분 · 1차 전투 당시의 방어선을 성벽을 따라 걸으며 가늠해볼 것 |
걷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
· 촉석루에서 남강을 내려다보는 풍경은 해 질 무렵이 특히 아름답다.
· 운영시간·요금은 바뀔 수 있어 방문 전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한다.
| 위치 | 경남 진주시 남강로 626 |
|---|---|
| 운영시간·요금 | 장소별로 다르며 변경될 수 있습니다 — 방문 전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하세요 |
| 코스 거리 | 약 20분(추정)(추정치) |
참고 자료
- 진주성은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됐다. 면적 171,805.1㎡. — 사적 진주성 (국가유산포털)
- 1차 진주성 전투(1592년 10월): 김시민이 약 3,700명으로 약 2만 왜군을 격퇴, 임진왜란 3대첩. 2차 진주성 전투(1593년 6월): 김천일·이종인·황진 등이 항전했으나 함락, 왜군도 피해가 커 철수. — 진주전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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