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과 성곽

공산성 걷는 방법 — 광복루의 첫 현판은 총독이 썼다

레트블 2026. 10. 18. 12:23

GONGJU · FORTRESS WALK

공산성 걷는 방법

광복루의 첫 현판은 총독이 썼다

公 山 城

읽는 시간 약 12분 · 걷는 시간 약 1시간 30분~2시간 30분

공주 공산성 광복루 현판과 누각
PHOTO 01 · 공산성 동쪽 봉우리의 광복루(光復樓). 지금의 이름을 얻기까지 자리도, 이름도 한 번씩 바뀌었다.

Ashy Minivet · CC0 (Wikimedia Commons)

공주 공산성의 동쪽 끝, 해발 110m 봉우리에는 작은 누각이 하나 서 있습니다. 붉은 기둥 위에 '광복루(光復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어 많은 사람이 해방을 기념해 새로 지은 건물로 여깁니다. 그런데 이 누각은 원래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고, 처음 걸린 현판에는 전혀 다른 이름이, 그것도 조선총독의 글씨로 쓰여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오늘은 이 누각이 어떻게 산꼭대기로 올라가 두 번 이름을 바꿨는지에서 출발해, 백제의 왕이 마지막 엿새를 보낸 성, 피란 온 임금이 나무에 벼슬을 준 성까지 공산성을 겹겹이 읽으며 걸어봅니다.

위치 충남 공주시 금성동·산성동 일대, 금강 남쪽 공산(公山)
형태 두 봉우리(동 110m·서 85m)와 골짜기를 감싼 산성, 석성과 토성이 섞임
규모 성벽 총 2,660m (동쪽 735m는 토성, 나머지 석성) · 동서 약 800m, 남북 약 400m
시대 백제 웅진 도읍기의 왕성으로 여겨지며, 조선 후기까지 거듭 고쳐 쌓음
지정 사적 (1963년 1월 21일) ·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2015)

額

CHAPTER 01

산 아래 문루가 산꼭대기로 올라가다

광복루의 출발점은 산 아래, 금강 쪽 북문인 공북루 옆이었습니다. 조선 후기 공산성 안에는 충청도 군사를 지휘하는 중군영(中軍營)이 있었는데, 광복루는 바로 이 중군영의 문루였다고 합니다. 문헌에 따라 폐문루(閉門樓), 해상루(海上樓) 같은 이름으로도 불렸다고 전합니다.24

이 문루가 지금 자리로 옮겨진 것은 일제강점 초기입니다. 1932년에 나온 『충청남도발전사』를 인용한 지역 언론 보도와 국립공주박물관의 전시 설명에 따르면, 일제는 문루를 성의 가장 높은 동쪽 봉우리(110m)로 옮기고 이름을 웅심각(雄心閣)으로 바꿨으며, 1913년 5월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그 현판 글씨를 썼다고 합니다.56

왜 굳이 산 위로 옮겼는지에 대한 공식 설명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금강과 공주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상에 새 지배자의 글씨를 건 누각을 세웠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의도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성을 지키던 군영의 문이 성을 차지한 쪽의 전망대가 된 셈입니다.

  처음 1913년 1946년 이후
자리 공북루 옆 중군영 동쪽 봉우리 정상 동쪽 봉우리 정상
이름 중군영 문루 웅심각 광복루
현판을 정한 사람 (기록 불명) 조선총독 데라우치 김구·이시영 방문 때 명명

光

CHAPTER 02

1946년 4월, 이름을 되찾다

해방은 이 누각에도 찾아왔습니다. 1945년 광복 뒤 공주 주민들이 낡은 누각을 손보았고, 이듬해인 1946년 4월 백범 김구와 성재 이시영이 공주를 찾아 이곳에 올랐습니다. 이때 나라를 되찾았다는 뜻을 담아 '광복루'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집니다.25

지금의 광복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얹은 바닥 면적 약 24.6㎡의 아담한 누각입니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습니다.28 크기로 보면 성안의 다른 누각보다 오히려 작지만, 담고 있는 시간은 가장 복잡한 건물입니다.

건물은 그대로인데, 현판이 주인을 말해준다.

같은 기둥과 지붕 아래 '웅심각'과 '광복루'가 차례로 걸렸습니다. 광복루 앞에서는 현판을 한 번 올려다보세요. 이 글자 자리가 30여 년 동안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는 사실이, 이 누각을 해방 기념물보다 더 정확한 역사 교재로 만듭니다.

城

CHAPTER 03

숫자로 읽는 2,660m

공산성은 숫자 몇 개만 알고 걸어도 훨씬 입체적으로 보입니다.

① 2,660m 가운데 735m는 흙이다. 성벽 대부분은 돌로 쌓은 석성이지만 동쪽 735m 구간은 흙을 다져 쌓은 토성입니다. 특히 광복루 주변에는 토성이 두 겹으로 남아 있는데, 공산성에서 이중 토성이 확인되는 곳은 이 일대뿐입니다.24 백제의 흙 성벽 위에 조선의 돌 성벽이 덧쌓인 흔적을 읽을 수 있는 구간이지요.

② 110m와 85m, 두 봉우리. 성은 동쪽 110m, 서쪽 85m 두 봉우리와 그 사이 골짜기를 감싸고 있습니다.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인 길쭉한 모양이라 북쪽은 금강이, 나머지는 가파른 산줄기가 천연 해자 노릇을 합니다.1

③ 문 넷, 그중 둘은 1993년생. 공산성에는 동서남북 네 문이 있습니다. 남문 진남루와 북문 공북루는 조선 시대 누각이 전해 오지만, 서문 금서루와 동문 영동루는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93년에 복원했습니다. 금서루는 원래 위치보다 약간 남쪽에 세워졌다는 점도 알아두면 좋습니다.17

공산성 서문 금서루와 성벽
PHOTO 02 · 서문 금서루. 대부분의 방문객이 이 문으로 성에 들어선다. 1993년에 복원된 문이다.

Ashy Minivet · CC0 (Wikimedia Commons)

降

CHAPTER 04

660년 7월, 웅진성의 닷새

공산성은 백제가 475년 한성을 잃고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긴 뒤 538년 사비(부여)로 떠나기까지, 60여 년 동안 왕도를 지킨 성으로 여겨집니다.111 그리고 백제가 끝나는 장면에서 이 성은 다시 한번 무대에 오릅니다.

660년 나당연합군에 사비성이 위태로워지자 의자왕은 7월 13일 밤 태자와 함께 웅진성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그런데 닷새 뒤인 7월 18일, 의자왕은 항복합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두고 기록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311

"18일에 의자왕이 태자와 웅진방령의 군사 등을 거느리고 웅진성으로부터 와서 항복하였다."
— 『삼국사기』 권5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7년(660) 7월조 (국사편찬위원회 번역)11
"그 대장 예식(禰植)이 또 의자를 데리고 와서 항복하였다." (其大將禰植又將義慈來降)
— 『구당서』 권83 열전 소정방전 (원문 직역)12

『삼국사기』는 왕이 스스로 나와 항복했다고 쓰지만, 중국 쪽 기록은 웅진성을 지키던 장수가 왕을 넘겼다고 적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장수를 예식진(禰寔進)으로 보고, 그가 의자왕을 붙잡아 당나라 장수 소정방에게 넘겼다고 설명합니다.3 어느 쪽이든, 백제의 마지막 저항 거점은 싸움 없이 닫혔습니다. 공산성 안 왕궁 추정지에 서면 이 닷새 동안의 침묵을 한 번쯤 떠올려 볼 만합니다.

이후에도 성은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822년에는 김헌창의 난 때 반란의 무대가 되었고,1 2011년에는 성안 발굴 조사에서 '정관 19년(貞觀十九年, 645년)'이라는 글자가 적힌 옻칠 갑옷이 출토되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14

樹

CHAPTER 05

임금이 벼슬을 내린 두 그루 나무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 한양이 함락되자 인조는 남쪽으로 피란해 공산성에 머물렀습니다. 2월 13일부터 18일까지 엿새 동안입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임금이 성안 두 그루 나무 아래에서 반란 진압 소식을 기다렸고, 승전보가 오자 그 나무에 정3품 통정대부 벼슬을 내렸다고 합니다.4

그 자리에 선 정자가 '두 나무'라는 뜻의 쌍수정(雙樹亭)입니다. 1734년에 지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 연대에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도 있어 정확한 건립 시기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4 정자 옆에는 인조의 체류 사실을 새긴 쌍수정사적비가 1708년에 세워져 남아 있습니다.4

북문 공북루(拱北樓)도 같은 시대의 건물입니다. 1603년 유근이 옛 망북루 터에 세운 정면 5칸, 측면 2칸의 문루로, 국립공주박물관 자료에는 1602년으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1663년 송시열이 쓴 중수기가 전해집니다.26 이름처럼 북쪽, 곧 임금이 있는 한양을 향해 두 손을 모은다는 뜻으로 풀이되는 이름입니다.

공산성 북문 공북루
PHOTO 03 · 금강을 마주한 북문 공북루. 광복루는 원래 이 근처 중군영의 문루였다.

Ashy Minivet · CC0 (Wikimedia Commons)

공북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돌로 계단식 벽을 쌓은 연못 연지(蓮池)가 있습니다. 동서 약 21m, 남북 약 15.3m, 깊이 7.7m에 이르는 깊은 저수 시설로, 금강 쪽에 만하루가 붙어 있습니다.4

공산성 연지와 만하루
PHOTO 04 · 계단식 석축으로 쌓은 연지와 그 옆 만하루. 위에서 내려다보면 깊이가 실감 난다.

Bernard Gagnon · CC0 (Wikimedia Commons)
연도 공산성에 일어난 일
475~538 백제 웅진 도읍기, 왕성 역할
660 의자왕 7월 13일 웅진성 피신, 18일 항복
822 김헌창의 난
1603 공북루 건립 (박물관 자료는 1602)
1624 이괄의 난, 인조 6일간 체류
1708 쌍수정사적비 건립
1913 문루를 정상으로 옮겨 '웅심각', 총독 현판 (전함)
1946 김구·이시영 방문, '광복루'로 명명 (전함)
1963 사적 지정
1993 금서루·영동루 복원
2011 '정관 19년' 옻칠 갑옷 출토
2015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백제역사유적지구)

步

WALK

금서루에서 시작하는 한 바퀴

충청남도 안내에 따르면 성곽을 한 바퀴 도는 데 빠르면 1시간 30분, 천천히 둘러보면 2시간 30분쯤 걸립니다.10 서문 금서루로 들어가 북쪽 금강 변을 먼저 걷고, 동쪽 봉우리의 광복루를 지나 남쪽으로 돌아오는 시계 방향 코스를 추천합니다. 광복루의 이야기를 알고 북문 쪽 중군영 자리를 먼저 본 뒤 정상에 오르면, 누각이 옮겨 간 거리가 몸으로 느껴집니다.

순서 지점 놓치지 말 것
1 금서루 (서문) 1993년 복원, 원래 터보다 약간 남쪽
2 공산정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성벽 위 정자
3 공북루 (북문) 5칸 문루, 광복루가 처음 서 있던 일대
4 연지 · 만하루 깊이 7.7m의 계단식 연못
5 영은사 연지 근처, 성안에 자리한 절
6 임류각 성안 누각, 잠시 쉬어 가기 좋은 곳
7 광복루 현판 올려다보기, 주변 이중 토성
8 영동루 (동문) 1993년 복원된 동문, 토성 구간의 끝
9 진남루 (남문) 조선 시대 누각이 남은 남쪽 정문
10 쌍수정 · 사적비 인조와 두 나무 이야기, 1708년 비석
11 금서루로 원점 회귀 성벽 위에서 본 공주 시가지
공산성 동문 영동루
PHOTO 05 · 동문 영동루. 광복루에서 내려오면 만나는 문으로, 금서루와 함께 1993년에 복원되었다.

Ashy Minivet · CC0 (Wikimedia Commons)
걷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
· 출발은 서문 금서루 쪽이 가장 편합니다. 대부분의 방문객이 이 문으로 성에 들어섭니다.
· 성벽 위 길은 오르내림이 잦고 난간이 없는 구간이 있습니다. 미끄럽지 않은 신발을 신고, 아이와 함께라면 성벽 바깥쪽 가장자리를 피하세요.
· 광복루가 있는 동쪽 봉우리는 그늘이 있지만 오르막이 길어 물을 챙기는 게 좋습니다.
· 관람 시간과 입장료, 문화관광해설 운영은 바뀔 수 있으니 공주시 문화관광 누리집에서 확인하고 가세요.

공산성을 걷다 보면 누각마다 현판을 올려다보게 됩니다. 공북루는 한양을 향한 마음을, 쌍수정은 피란 온 임금의 안도를 이름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광복루는 한때 다른 이름을 걸어야 했던 시간을 이름 뒤에 감추고 있습니다. 정상에서 금강을 내려다보며 그 두 개의 현판을 겹쳐 떠올려 보세요. 공산성이 1,500년 동안 지켜 온 것은 성벽만이 아니라, 누가 이름을 붙일 권리를 갖느냐는 물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참고 자료
1. 「공주 공산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ncykorea.aks.ac.kr, E0004450)
2. 「공북루」·「광복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0004327, E0004451)
3. 「예식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0071949). 『삼국사기』·『구당서』 관련 서술 포함
4. 『디지털공주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gongju.grandculture.net, GC01700520·GC01700521·GC01700491)
5. 공주의소리 보도 (gjsori.com, idxno=1215). 『충청남도발전사』(1932) 인용
6. 국립공주박물관 전시 설명 (dapsa.kr 게시본 재인용)
7. 공주시 문화관광, 「공산성」 (gongju.go.kr/tour)
8.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광복루」 (ctptNo=1333400120000)
9.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Baekje Historic Areas" (whc.unesco.org/en/list/1477)
10. 충청남도 누리집, 공산성 걷기 안내 (chungnam.go.kr, MD0003239473)
11. 『삼국사기』 권5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7년(660) 7월 13일·18일조 및 주석, 국사편찬위원회 한국 고대 사료 DB (db.history.go.kr/id/sg_005r_0040_0340, sg_005r_0040_0350). 웅진 천도 475년(문주왕 원년)·사비 천도 538년(성왕 16) 주석 포함
12. 『구당서』 권83 열전33 소정방, 위키문고 원문 (zh.wikisource.org/wiki/舊唐書/卷83)
※ 『삼국사기』 인용문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번역을, 『구당서』 인용문은 원문을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웅심각 개명과 데라우치 현판, 1946년 명명 경위는 지역 언론과 박물관 전시 자료에 근거한 내용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로 소개했습니다. 사진은 Wikimedia Commons(Ashy Minivet, Bernard Gagnon, 모두 CC0)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