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한옥마을 걷는 방법
전주한옥마을 걷는 방법
태조의 자취, 골목에 남다
읽는 시간 약 9분 · 걷는 시간 약 16분
| 위치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교동 일원 |
|---|---|
| 형성 | 1930년대 전후 ~ 1960년대 |
| 코스 | 4개 지점 · 약 0.84km |
| 지정 | 사적 2 · 보물 1 · 전북 기념물 1 |
전주한옥마을은 사실 '한옥마을'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불과 100년 남짓 된 동네입니다. 성벽이 사라진 빈자리에 사람들이 한옥을 한 채씩 짓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일종의 저항의 결과물입니다. 그 좁은 골목 안에는 조선을 세운 태조의 얼굴과, 그로부터 400년 가까이 지나 다른 믿음을 지키다 숨진 이들의 자리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풍남문에서 경기전, 전동성당을 지나 오목대까지 — 그 골목을 걸으며 '한옥마을'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시간의 층을 하나씩 짚어봅니다.
01. 한옥마을은 어떻게 여기에 생겼을까
전주한옥마을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건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상황이 급격히 바뀌었고, 1911년 무렵에는 풍남문을 제외한 전주읍성의 성곽이 대부분 철거되면서 성 밖에 머물던 일본인들이 성 안 도심으로 옮겨오기 시작했습니다.
성곽이 사라진 정확한 계기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조금 다르게 짚습니다[6]. 1907년 조선통감부의 폐성령에 따라 성문이 철거된 것을 배경으로 꼽는 쪽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도심으로 밀려드는 일본식 가옥에 맞서 한국인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을 한 채씩 짓기 시작한 게 1930년대부터라는 점은 같습니다.
두 기록이 가리키는 해는 조금씩 다르지만 방향은 같습니다 — 성이 사라진 자리에서, 민족적 자긍심을 지키려는 자발적인 움직임이 쌓여 지금 우리가 걷는 이 골목이 만들어졌습니다. 오늘날 전주시는 이 일대를 문화관광 명소로 보존·개발하고 있습니다. 왕조가 지은 게 아니라, 성이 무너진 자리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지은 동네라는 점에서, 전주한옥마을의 첫 장은 건축이 아니라 사람들의 선택에서 시작합니다.
02. 태조의 얼굴을 모신 전각
경기전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초상, 어진을 모신 곳입니다. 태종은 1410년 전주·경주·평양 세 곳에 태조의 초상을 모시는 전각을 짓고 '어용전'이라 불렀습니다[1].
이름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태종 12년(1412)에는 '태조 진전'으로, 세종 24년(1442)에 와서야 전주의 전각은 지금 이름인 '경기전'을 얻었습니다.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사라졌다가 1614년(광해군 6) 다시 지어졌습니다.
흥미로운 건 지금 정전에 봉안된 어진이 1410년의 그 그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원본이 낡자 1872년(고종 9) 그대로 모사한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유일한 태조 어진이며, 1987년 보물 전주 태조 어진으로 지정됐다가 2012년 국보 전주 태조 어진으로 승격됐습니다[2]. 우리가 보는 어진은 '원본'이 아니라 '복제의 기록'인 셈입니다 — 그럼에도 국보로 승격된 건, 모사 자체가 원본을 잇는 정통성의 행위로 인정됐기 때문입니다.
03. 순교의 터에 세운 성당
경기전에서 길 하나를 건너면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이 보입니다. 전동성당이 서 있는 이 자리는 조선 후기 천주교인들이 처형된 순교지였습니다.
정조 15년(1791) 신해박해 때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이 이곳에서 처형돼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가 됐고, 순조 1년(1801) 신유박해 때는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윤지헌(프란치스코) 등이 뒤이어 순교했습니다[3].
이들을 기려 1908년 성당 건축이 시작됐습니다. 명동성당을 감독했던 포와넬 신부가 설계를 맡았고, 2대 주임 라크루 신부 때인 1931년에야 모든 시설이 갖춰져 축성식을 치렀습니다 — 착공부터 완공까지 23년이 걸린 대역사였습니다. 대지 면적은 7,809㎡, 1981년 9월 25일 사적 전주 전동성당으로 지정됐습니다.
04. 개선장군이 잠시 머문 언덕
경기전에서 큰길을 따라 동쪽으로 걸으면 완만한 언덕이 나옵니다. 오목대는 고려 우왕 6년(1380) 황산(지금의 남원 운봉)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르고 개선하던 이성계가 잠시 머물렀던 자리입니다[4].
이를 기념해 대한제국 광무 4년(1900)에 비석이 세워졌는데, 비문 '太祖高皇帝駐蹕遺址'(태조고황제가 잠시 머물렀던 자리)는 고종이 직접 쓴 친필을 새긴 것입니다.
오목대와 이목대는 1974년 9월 24일 전라북도 기념물 오목대와 이목대로 함께 지정됐습니다. 둘은 이름도 비슷하고 거리도 가깝지만 가리키는 인물과 사건은 전혀 다릅니다. 오목대는 운봉 황산에서 개선하던 이성계가 머문 '개선의 자리'이고, 이목대는 이성계의 5대조 목조 이안사가 살았다고 전해지는 '뿌리의 자리'로, 역시 고종 친필 '목조대왕구거유지' 비석이 서 있습니다.
05. 전주읍성의 마지막 문
전동성당 맞은편, 로터리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2층 누각이 풍남문입니다. 전주읍성을 둘러쌌던 성곽과 네 개의 문 중, 지금까지 남은 건 이 남문 하나뿐입니다.
정유재란 때 무너진 문은 영조 10년(1734) 성곽과 함께 다시 지어지며 '명견루'로 불렸습니다. 지금 이름인 '풍남문'은 영조 44년(1768) 관찰사 홍낙인이 중건하면서 새로 붙인 이름입니다.
이 문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전주 풍남문으로 지정됐습니다[8]. 1층은 앞면 3칸·옆면 3칸, 2층은 앞면 3칸·옆면 1칸이며, 지붕은 옆에서 보면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입니다. 성은 사라졌지만 문은 남았고, 그 문 하나가 지금은 한옥마을 전체의 상징이 됐습니다.
06. 한 골목, 여러 시대
네 지점을 연대순으로 늘어놓으면, 이 골목이 품은 시간의 폭이 분명해집니다. 1380년 이성계가 황산대첩에서 개선하며 오목대에 머물렀고, 1410년 태종이 태조의 초상을 모실 전각(경기전의 시작)을 세웠습니다. 1442년 세종 대에 '경기전'이라는 지금 이름을 얻었고, 정유재란으로 불탄 건물은 1614년 광해군 때 다시 지어졌습니다.
1734년 풍남문이 성곽과 함께 중건되며 '명견루'로 불렸고, 1768년 관찰사 홍낙인이 중건하며 지금 이름을 붙였습니다. 1791년 신해박해로 윤지충·권상연이 전동성당 자리에서 처형되며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가 됐고, 1801년 신유박해 때 유항검·윤지헌 등이 같은 자리에서 뒤이어 순교했습니다.
1900년 오목대·이목대에 고종 친필 비석이 세워졌고, 1908년 순교자들을 기려 전동성당 건축이 시작돼 1931년 축성식을 치렀습니다. 1934년 전라감영이 소실되는 등 근대의 변화를 거치며, 1905~1911년 을사조약과 성곽 철거를 지나 1930년대부터 교동·풍남동에 한옥촌이 형성됐습니다. 1963년 풍남문, 1974년 오목대·이목대, 1981년 전동성당, 1991년 경기전이 차례로 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2012년 태조 어진이 국보로 승격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습니다.
풍남문에서 오목대까지는 걸어서 16분 거리지만, 그 사이에 놓인 사건들은 고려 말의 전쟁부터 2012년의 국보 승격까지 600년을 가로지릅니다. 성이 사라진 자리에 주민들이 쌓아 올린 동네가 왕조의 얼굴과 순교자의 기록을 함께 품게 된 과정, 그것이 전주한옥마을이라는 이름 뒤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지점을 걷다
풍남문에서 출발해 전동성당, 경기전을 지나 오목대까지 한 방향으로 걷는 코스입니다. 마지막 구간(경기전→오목대)은 완만한 오르막과 짧은 계단이 있어 체감 속도가 느려집니다. 시간이 부족하면 오목대를 빼고 세 곳만 돌아도 핵심은 충분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도보 약 6분 + 관람 약 25분, 총 약 30분 안팎).
전체 코스
| 지점 | 구간 정보 |
|---|---|
| 1. 풍남문 | 출발 지점 · 2층 팔작지붕, 전주읍성의 마지막 문 |
| 2. 전동성당 | 풍남문에서 약 205m(도보 약 4분) · 체류 약 10분 · 로마네스크 종탑 |
| 3. 경기전 | 전동성당에서 약 100m(도보 약 2분) · 체류 약 15분 · 태조 어진 봉안 |
| 4. 오목대·이목대 | 경기전에서 약 538m, 오르막(도보 약 11분) · 체류 약 10분 · 고종 친필비 |
총 약 0.84km · 도보 약 16분 · 관람 포함 전체 약 1시간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
전동성당은 관광지이기 전에 지금도 미사가 봉헌되는 성당입니다. 내부를 둘러보려면 미사 시간을 피해 방문하는 게 좋습니다.
경기전은 유료 관람 구역이 있을 수 있으니, 정확한 운영시간과 요금은 방문 전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하세요.
전주한옥마을(풍남문·경기전 일대)은 전주역·전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모두 버스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경내 전용 주차장은 별도로 없어 인근 공영주차장을 이용해야 합니다.
코스는 원점회귀가 아니라 풍남문→오목대 일직선 동선입니다. 돌아올 땐 왔던 길을 되짚거나 한옥마을 안쪽 골목을 통해 복귀하면 됩니다.
| 위치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교동 일원(경기전·전동성당·풍남문), 기린대로 55(오목대·이목대) |
|---|---|
| 운영시간·요금 | 장소별로 다르며 변경될 수 있습니다 — 방문 전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하세요 |
| 지정 현황 | 사적 전주 경기전 · 사적 전주 전동성당 · 보물 전주 풍남문 · 전라북도 기념물 오목대와 이목대 |
| 주차 | 경내 전용 주차장 없음 · 인근 공영주차장 이용 |
| 함께 보기 | 전주향교, 태조로 일대 한옥 거리 |
참고 자료
- 경기전의 연혁(1410년 어용전 건립, 1412년 태조 진전, 1442년 '경기전' 명명, 1991년 사적 지정, 1614년 중건)은 국가문화유산포털의 기록을 따랐습니다. — 국가문화유산포털 — 전주 경기전
- 태조 어진이 1872년 모사됐고 1987년 보물에서 2012년 국보로 승격됐다는 내용은 전북일보 보도를 따랐습니다. — 전북일보 — 전주한옥마을 경기전,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볼 수 있는 곳
- 전동성당의 순교 기록(1791년 신해박해, 1801년 신유박해)과 1981년 사적 지정은 국가문화유산포털을 따랐습니다. 착공·완공 연도(1908~1931)와 설계자(포와넬 신부)는 가톨릭신문 보도를 따랐습니다. — 국가문화유산포털 — 전주 전동성당
- 오목대·이목대의 유래(1380년 황산대첩, 1900년 고종 친필비, 1974년 전라북도 기념물 지정)는 국가문화유산포털을 따랐습니다. — 국가문화유산포털 — 오목대이목대
- 본문 사진은 한국관광공사가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으로 제공한 각 장소 자체 등록 이미지입니다. —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 전주한옥마을의 형성 시기는 1911년 성곽 철거를 계기로 보는 기록과, 1907년 조선통감부 폐성령을 계기로 꼽는 기록이 조금씩 다릅니다 — 본문에 두 기록을 함께 밝혔습니다.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 국내 최대규모의 전통 한옥촌, 전주 한옥마을
- 코스 거리·소요 시간은 지점 간 좌표 거리에 우회계수(1.3배)를 적용해 계산한 추정치이며, 실제 도보 경로·소요 시간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거리 추정 방식 안내
- 풍남문의 연혁(1734년 중건·'명견루', 1768년 '풍남문' 개칭, 1963년 보물 지정)은 위키백과를 따랐습니다. — 위키백과 — 풍남문